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이토 마코토 (문단 편집) == 여담 == * 개인적 [[성격]]은 털털했다고 전해진다. 1914년 전역 직후 구입한 [[별장]]에서 여느 집 노인들과 다름없이 검소하게 지내다 보니, 그 지역의 서장이 일을 하고 있던 제독을 보고 "못 보던 영감님이네."라고 했다가 얼굴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 [[군인]]치고 신사적이었다고 하며, 평소에 분위기 파악이 빠르고 조용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일본 총리 재임 시절 [[정치인]]들이 맹렬하게 비난하고 도발을 해도 "긴장감이 없어보이지만 저는 극도로 긴장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공손하게 답변했을 정도로 점잖았다. * [[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감사 편지나 답장을 자주하였으며, [[서예]]를 좋아했던 그에게 휘호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빠짐없이 썼다고 한다. 한 번 들어온 서신은 반드시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고 개인정보 습득에 빨랐는데, 이런 습관 덕에 그가 지녔던 서류가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존될 정도. * [[2.26 사건]] 때 같이 암살당했던 [[다카하시 고레키요]] 대장대신과 [[절친]]이었다고 한다. * [[고자]]라는 설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어릴 적 개에게 물려 뜯겨나가 외부 [[성기]]가 완전히 없었다는 것. 실제로 [[결혼]]을 하기는 했으나 친자를 보지 못했고 [[양자(가족)|양자]] 1명만 두었다. 하지만 [[수염]]을 기른 것으로 보아 친자가 없어 생긴 낭설일 가능성이 크다. 고자는 [[테스토스테론]] 부재로 인해 수염이 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외부 성기가 없으면 병학교 신체검사를 통과했을 리가 없다. 당시의 일본군 신체검사도 그렇고 현재의 자위관 신체검사도 그렇고 고자는 군인으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난임이거나 불임이어서 그랬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어도, 수염 나고 사관학교 신체검사까지 통과한 사람이 고자라는 건 완전히 헛소리이다. * 1931년 서울 [[조계사]]에 목조관음보살상을 기증했다. 이 관음상을 모시기 위해 남산 기슭에 [[약초사]]라는 절이 세워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